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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정보]  4.3의 제주를 기억하며(3). 1년 전에 시작된 비극

1947년. 새해가 밝았지만 특별히 바뀌는 것이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제주의 삶은 여전히 힘들었고 경찰의 감시는 심해집니다.

 

국제적으로 보자면 47년 1월을 기점으로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 각국에서 공산정부가 들어섰고 서방 국가들은 유럽이 갈라져 동서냉전이 고착화 되어가는 모습에 당황했고 미국의 반공 기조 역시 강해졌습니다. 아직까지 한반도 내에서 좌익의 활동이 불법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습니다.

46년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에서 발생한 10.1 좌익 봉기를 경험한 미군정에게 있어 집단활동은 무언가 불온한 활동으로 보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47년 3월 1일. 문제의 사건이 터집니다.

 

제주 북국민학교(현 북초등학교)에서 삼일절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좌익계열 단체에서 동원한 1만7천명, 좌익과 관계없는 민간인과 학생 8천명 등 2만5천명(최대 추산 3만명)이 집결했고, 이 행사를 4백여명의 경찰들이 감시 합니다.

 

이 행사가 끝난 뒤 가두시위가 이어졌는데 시위대의 팻날용 장대에 찔린 기마경찰의 말이 날뛰면서 근처의 아이가 말다리에 채이는 일이 터집니다.

아이는 고꾸라졌는데 기마경찰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버리자(고의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시위대가 분노하며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돌을 던지는 이 행위가 잘한것은 아니지만 이 소동을 대구 같은 봉기로 판단한 경찰들이 시위대에 총기를 난사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삼일절 발포사건으로 민간인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습니다. 문제는 사망자들의 다수는 돌팔매질과 관계없는 주변 민간인 대피자들이었고 이를 증명하듯 6명 중 5명이 등 뒤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습니다.(사망자 4명은 30~50대의 남성 농부, 1명 젖먹이를 안고있던 21세의 주부, 나머지 1명은 15세의 남학생) 

 

육지의 좌익 난동으로 경찰이 살해당하는 등의 일로 신경이 곤두섰던 경찰들, 그리고 그 경찰들이 국민들을 우습게 보던 왜정 당시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이 참상의 발단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경찰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로 끝날수 있었지만 치안기관의 안정에 중점을 뒀던 미군정은 경찰을 두둔했고 경찰역시 '폭동'에 대한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제주의 민심은 나락으로 가버리고, 좌우익의 대립도 돌이킬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립니다.

 

이 발포사건은 위와 같은 이유로 4.3사건의 타임라인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힙니다.

48년 4.3사건은 이보다 1년 전인 47션 삼일절 발포사건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시각의 역사학자들도 다수입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그리 생각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뒤에 큰 영향을 미칠 일들이 연이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삼일절 발포사건 처리에 대한 항의로 제주도지사가 사임했고, 3월10일부터 제주 전역에서 총 파업이 시작됩니다.

 

ps) 오늘 내용에 대한 영상은 유튜브에서 ‘EBS다큐프라임 바람의 집'을 검색하면 시청 가능합니다.


전체 댓글 1개

야옹야옹
2026.03.27 21:14
글을 읽고 EBS 를 보면 더 이해가 잘 되겠네요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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