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이프 많이 모으시고 쓰시는 분들도 크루시블이라는 회사는 생소하신 분들이 많을겁니다.
하지만 S30V, S35VN은 몰라도 154CM, 440C, D2 강재는 나이프 써본 분들이라면 거의 다 들어보셨거나 이미 쓰고계실건데요,

(출처: Knife Magazine)
이 회사가 바로 그 강재들을 만들던 회사입니다.
보통 100년동안 이어져온 회사~~ 100년이 넘는 역사~~ 라고들 기사에서 많이 쓰는데,
사실 뿌리를 따라가면 1770년대(!!!) 까지 내려가는 회사입니다. 뭐 이때까진 영국회사였지만요…
사실 이 회사는 2009년에 이미 한번 파산신청을 했고, 2024년 말에 다시 파산신청을 한 후 올해 초에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2009년에는 2008~2010년 자동차 산업 위기 때 자동차 산업으로부터 철강 주문이 줄어들면서 파산신청을 했고,
다행히 경매를 거쳐 투자회사에 팔리면서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다만 연구개발센터, 강재 재고를 가지고 제조, 세일즈와 고객서비스를 하던 사무실을 죄다 팔게되면서 사실상 “강재를 만들어 팔기만 하는” 회사가 되어버렸죠.
특히 제조/세일즈가 마진이 좋아지는 부분인 만큼 타격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2024년에는 전반적인 철강 주문이 줄어들면서 수백만 달러의 빚을 지고 다시 한번 파산신청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무려 경매 참여자가 하나밖에 없어 유일한 입찰자인 프랑스 ERASTEEL에 1,730만 달러에 팔리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ERASTEEL 이 지식재산권만 산건지 아니면 회사 전체를 산 뒤에 회사 자체는 문을 닫기로 한건지 남아있던 공장까지 팔리면서 결국 크루시블이라는 회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일부 크루시블 제 강재를 사용한 나이프들입니다. 더 있겠지만 찾기가 귀찮아서…)
그러면 크루시블이 1970년대에 개발해서 계속 사용해오던 분말야금방식(CPM: Crucible Particle Metallurgy)으로 제작되는 강재들은 어떻게 될까요?
일단 일부 강재 지식재산권은 프랑스 ERASTEEL 에서 구매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강재가 미국제에서 프랑스제로 넘어갔으니까 강재 더 비싸지는거 아냐? 라는 질문을 하실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이전에도 “분말”야금강에 쓰이던 그 분말은 크루시블이 건재하던 때에도 유럽에서 수입해서 쓰던 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유럽→크루시블→미국 나이프메이커 로 가던게 유럽→ERASTEEL→미국 나이프메이커 로 가는걸로 바뀌면서 크게 변하는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문제가 뭐야? 라고 생각하신다면…

(출처: 위키피디아 / 지금 보니 일부 강재는 여기 안써있네요…? 너무 많아서 그런가)
위 표에서 보시다시피 크루시블이 개발+생산하던 강재는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아마 나이프 좀 만져보신 분들이라면 어??? 이것도 여기서 만들던거야??? 하시는 강재가 많을겁니다.
미국 Niagara Specialty Metals 이나 프랑스 ERASTEEL 이 지식재산권을 구매하면서 계속 명맥을 이어갈 강재들도 있지만,
일부 구매되지 않은 지식재산권들(그것도 길게는 2028년까지 크루시블에 지식재산권이 유지됩니다)은 재고가 떨어지면 더이상 나오지 않을 확률도 있죠.
특히, CPM 툴스틸 중 15V의 경우 나이프 강재를 만드는 회사 중 크루시블이 유일하게 저 강재를 생산할만한 화로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더 높은 온도를 사용가능한 화로를 들이지 않는 이상 생산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크루시블 공장을 산 미국 사업가는 공장에서 강재를 만들거라고는 했지만 나이프용 강재를 만들지는 모르는 상태라…
결론
일단, 위에서 얘기한 15V 같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강재 외에는 대부분 지식재산권 구매/사용권 취득으로 그대로 CPM XXX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다만 구매되지 않은/사용권을 취득하지 못한 강재는?
넵. 대체재가 있습니다. 크루시블이 가장 오래되긴 했지만, 미국 내에도 Carpenter Steel 이 있어서 대체 강재를 만들 수 있고,
유럽에도 상술한 프랑스 ERASTEEL 이나 오스트리아 Böhler-Uddeholm(대표적으로 M390, VANAX 등…)등 다양한 회사가 있죠.
대부분의 강재는 명맥을 이어가겠지만 일부는 CPM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고, 극소수는 재고가 동나면 크루시블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뭐, 단종된지 10년이 넘는 나이프도 아직 쓰고/가지고 있는 저같은 녀석이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기억될 수 있겠죠 ㅎㅎ
그런데 정말, 크루시블이라는 이름은 나이프 강재 회사 이름으로는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ㅋㅋ
여러분도 아직 크루시블 강재를 사용한 나이프가 있다면 조금 더 소중히 여겨주는건 어떨까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