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중엽. 유럽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지식인과 중산층은 급증했지만 유럽은 여전히 왕과 귀족이 다스리고 있었고 폴란드, 핀란드 같은 유럽의 소국과 식민지는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절대다수의 서민은 보호법률 하나없이(혹은 허울뿐인) 자본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압제를 끊고 독립국을 세웠으며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를 없앤 미국은 상당히 이상적인 나라였습니다. 대혁명을 이끌었던 프랑스조차 이 당시엔 다시 황제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 프랑스의 지식인 중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에두아르 리불레가 프랑스-미국의 우호(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미국을 지원), 독립100주년 기념, 남북전쟁으로 노예제 폐지의 기념을 담아 여신상 건립을 제안했고 미국이 답함에 따라 동상 제작은 프랑스가, 부지와 받침대 제작은 미국이 맡기로 합니다.

(프랑스에서 해체중인 여신상)
이 두가지 모두 정부가 아닌 지식인들과 국민의 모금, 복권기금으로 충당했고 양국 통틀어 현재 원화 가치로 100억의 기금을 모아 제작과 운송을 완료했습니다.
운송은 약 200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뉴욕 앞바다에서 조립해서 현재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뉴욕은 당시 유럽 이민자들이 도착하는 장소였고 그들에게 미국땅이 계급이 없는 자유의 나라 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5.11 택티컬 리버티 커피 패치 (그린))

(5.11 택티컬 테이스트 프리덤 캔 패치 (멀티))
자유는 지금 기준으로는 당연한 도덕이지만, 계급과 차별이 태어날때부터 당연했던 과거에는 대단히 놀라운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자유와 부를 찾아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자유는 미국을 상징하는 개념이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무제한적으로 찍어내던 수송선의 이름도 자유수송선(리버티함)이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세상 이치가 동화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뉴욕시 이민자의 징병거부 폭동,
중국계, 아일랜드계 이민자에 대한 가혹한 노동착취,
인도-시크교도에 대한 벨링햄 폭동,
맥시코계에 대한 주트 수트 폭동,
흑백 분리정책인 짐 크로우 법 등
수많은 크고작은 사건들이 있어왔고 어떤것들은 극복하고 어떤것들은 현재진행형 입니다.

사실 이런 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단어 그자체의 순수한 자유는 없다고 봐야죠;;
물론 반미 입장인 나라들과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패거리가 그보다 나을거라는 거라는 생각은 1도 안합니다.
다만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나라는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거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