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국화이자 우리역사 속에서 고유히 언급되는 꽃 입니다. 무궁이란 말이 나타내듯이 개화시기인 7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것을 반복해 영원 무궁히 피는 꽃을 의미합니다.
역사서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록은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 역사서인 구당서와 신당서 입니다.
산해경에는 “동쪽 군자의 나라에는 훈화초(무궁화)가 매일 피고 진다"라고 언급되고,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이 당나라에 신라를 알릴때 “근화(목근화, 무궁화)의 나라"라고 소개했습니다.
(정확히는 "무궁화의 나라는 염치를 아는 자존심이 있고, 중국은 도덕을 숭상해왔다". 이를 바꿔말하면 “우리도 염치를 아는데 그렇게 도덕을 잘안다는 니들도 염치없이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라”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실학자도 우리를 근화의 나라라는 것을 재차 반복하며 우리민족의 꽃이 무궁화임을 명시했습니다.

구한말과 왜정 때 민족의 위기가 닥치자 무궁화에 대한 애정은 더욱 상승하게 됩니다.
독립문 행사때 불린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가 이미 등장했고, 차 미리사 여사가 근화여학교 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개설하기도 했습니다(현 덕성여대).
남궁억 선생은 강원도 홍천에서 무궁화 묘목을 대량으로 키우며 전국에 보급했고, 무궁화 자수법을 알려 여학생과 주부에게도 민족 정신을 키우고자 하였습니다.

왜정당시 일본의 핍박에도 그렇게 무궁화는 살아남았고, 광복후 1948년부터 국가의 상징 도안으로 지정되었고 민족정신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는 국기 깃봉에 무궁화 봉오리 형태 지정, 국가 문장을 무궁화로 지정했고, 무궁화 나무 노화에 따른 새로운 묘목의 체계적 보급을 위한 법률이 2016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쿠닌 고급형 무궁화 태극기 가죽 패치 와펜)
우리가 충령들을 잊지 않듯이, 이 한반도에서 무궁화도 말 그대로 무궁하게 영원불멸 이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