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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갤러리

[패치]  세일러복과 해군 이야기

군화와고무신 해군 지비츠 해비츠 3P SET

 

군화와고무신 스틸 앵커 해군 엠블럼 뱃지

 

현대의 세일러 복(일본어 세라 복)의 이미지는 통상 이렇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도 교복 디자인으로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특히 시골). 하지만 그 시작은 원래 해군 수병들의 군복이었지요.

 

19세기 이전까지는 해군의 제복이란 원래 없었습니다. 마지막 사진의 제일 우측처럼 사관이나 사관후보생 정도 되어야 지정된 제복이 있었습니다.

당시 군대는 지금처럼 통일된 제복이 있는것은 육군에나 있었던 일이었고, 해군은 평상복이 곧 작업복이었습니다. 전시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만 평시엔 소집을 해제하여 일반선원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굳이 해군제복을 갖추어 입힌다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습니다.

영국 해군이 본격적으로 대규모 상비 해군을 갖추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섬유제조 기술과 대규모 의복 제조 공장이 부족했던 이유도 한몫 했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유럽 바다에 맞는 자율적 의복을 갖추었습니다.

 

추위나 햇빛을 막기 위해 모자는 거의 쓰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물에 빠지는 비상시에 잡고 끌어당길 용도로 길게 길렀지만 거추장 스러움을 피하기위해 땋아내리거나 묶었습니다.

상의는 눈에 잘띄는 색으로 알아서 셔츠와 숏재킷을 입었고 바지는 캔버스 재질의 통이 크고 발목이 드러나는 짧은 것을 입었는데 이것을 슬롭Slop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엔 방수를 위해 옷에 타르를 발랐는데 캔버스 재질이 이것을 잘 흡수했고, 길이가 짧아야 미끄러운 갑판에서 옷을 밟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회중시계 중심이었던 시계가 손목시계로 바뀐것도 같은 이유로 독일제국 해군참모부 명령으로 손목시계의 착용을 강제했기 때문입니다.(미끄러운 판에 시계찾느라 안주머니 뒤지고 있을거냐?)

이런 의복에 피Pea코트 라는 짧은 양모코트를 입에 추위를 막았습니다. 피코트는 지금도 해군 복장으로 쓰이죠. 

 

그리고 19세기 산업혁명과 식민지로 부를 거머쥔 영국이 세일러 복을 도입하면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뀝니다.

당시의 전형적인 세일러 복입니다.

목뒤에 두른 스카프는 세일러 칼라 라고 불렀는데 칼라를 세워서 소리를 잘듣기 위한 용도로도 쓰였고, 당시에 머리카락에 타르를 발랐기 때문에 타르가 옷의 목깃에 묻는 갓을 방지하기도 했습니다.

V자 넥은 물에 빠지면 빠르게 벗기위해 단추가 없었습니다. 

가슴에 두른 스카프는 실크였는데 비상용 붕대, 땀닦는 수건 등 용도가 다양했습니다.

나팔바지는 물이 차오르거나 청소 때에 빠르게 바지 밑단을 걷어올리는 목적 이었습니다

납작한 빵모자(딕슨 모자)는 햇빛을 막는 동시에 좁은 선내에서 방해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용도가 확실한 세일러복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았으니 선상 생활의 지혜가 모인 집약체라 할만 합니다.

 

일본은 서구화의 열풍 속에 단정한 디자인과 대량생산이 편한 이유로 학생들의 교복을 여학생은 세일러복, 남학생은 해군 정복을 본떠 만들었고, 이런 디자인은 식민지였던 한반도에도 전해져 1970년대까지도 이런 형태가 남아있게 됩니다.

 

복장 하나에도 작업의 지혜와 의복의 변천사가 같이 깃들어있으니 이 맛에 일반 역사나 문화사를 끊을수가 없습니다ㅎㅎ


전체 댓글 6개

스피드킹
2026.03.20 20:58
범선시대 부터 해군의 생활상은 열악 했었죠..
마요르
2026.03.20 21:55
그게 너무 유명해서 인력이 부족하자 영국에서는 때때로 자진입대(강제)를 시행할 정도였지요.
조선시대에도 수군(해군) 일은 너무 힘들어서 신분은 양민이지만 직종은 천민으로 취급해서 강제로 세습하게 만든 신량역천身良役賤의 자리였죠.
의복과 장비가 최신화된 지금도 바다의 추위나 파도는 견디기 힘든데 그 당시엔 오죽했을까 싶습니다.
스피드킹
2026.03.20 22:34
마요르
<전투함과 항해자의 해군사>라는 책을 본적이 있는데 최소한의 의식주도 보장되지 않을정도로 열악하더군요,
식사는 쉽비스켓 뿐이고 마실 물도 없고, 야간당직 때문에 수면시간도 부족하고 군기강을 잡기위해 채찍질까지..
정말 아무도 하고싶어하지 않는게 이해가 가더군요.
마요르
2026.03.21 07:00
스피드킹
저도 그책 가지고 있습니다ㅎㅎ
말씀하신 이유로 영국 뿐 아니라 다른나라들도 숙련된 선원을 확보하려고 별짓을 다했는데, 반대로 타국의 숙련된 선원을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과 오스만제국 해군이 부딪힌 레판토 해전 당시 승리한 스페인은 포로가된 오스만 선원들을 고의적으로 포로교환에서 누락시키도 했지요.
이 모습을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라는 참전군인이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군인은 훗날 돈키호테 라는 소설을 씁니다ㅎㅎ
우디
2026.03.20 23:17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정말 해군복과 굉장히 흡사하네요ㅋㅋㅋ
마요르
2026.03.21 05:29
시청각 자료가 역시 최고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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