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설날 연휴.
친척들을 만나거나 인근의 명소를 찾아가는 등 적지 않은 시간을 도로 위에서 운전석에 앉아 지냈다. 아마 연휴동안 운전한 시간을 환산한다면 하루 평균 4시간 가량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연휴동안 도로 위에서 다양한 자동차를 봤다. 아마 요원들도 귀성길이나 여행 등 나름의 사유로 필자와 비슷한 풍경을 차창 너머로 봤으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옛날이었다면 귀했을 외제차까지 흔해져 설날의 도로는 오토 쇼 퍼레이드를 방불케 했다.
S클래스, E클래스나 5, 7시리즈, A6, A8 등 근사한 차량들도 볼만하다만 종종 필자의 눈을 잡아끄는 이질적인 차가 필자의 시선을 끌었다. 크고 웅장한 기세를 뽐내기는커녕 정반대로 작고 둥글둥글한 실루엣의 외제차였다.
‘쿠퍼’, ‘클럽맨’, ‘컨트리맨’ 등, 이름과 형상은 다르지만 유난히도 영국의 깃발을 형상화한 후미등이 하나같이 잘 어울리는 자동차, ‘미니MINI’ 브랜드의 자동차들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대형 차량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만, 정반대로 작음의 미학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인기를 누리는 독창적인 자동차를 전술적 시각으로 파헤쳐보고자 한다.
2차 세계대전도, 한국전도 다 지난 1950년대 중반.
평화로워야 했을 세상은 이념, 인종과 민족의 대립으로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특히 중동아시아에서는 주변의 아랍 국가들과 융화될 수 없는 유대인의 국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자리잡아 주변국들의 눈엣가시가 되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스라엘은 1948년에 건국 선언을 하자마자 건국 이래 첫 전쟁인 ‘1차 중동전쟁’을 치렀을까.
1편이 있다면 속편도 있는 법. 1956년 10월 29일부터 11월 7일까지 9일간의 짧지만 치열한 난동이 벌어진다.
바로 ‘2차 중동전쟁’ 혹은 ‘수에즈 위기’로 불리는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주변국으로 가로막힌 영토를 뚫어 홍해로 진출하는 해안선을 얻고 싶었고, 이집트는 눈엣가시 이스라엘의 해상 진출을 막으려 하였다. 두 국가는 서로의 중간 지점인 시나이 반도로 뛰쳐나와 난투를 벌인다.
같은 시각, 영국과 프랑스는 옷깃이 세절기에 말려든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시나이 반도와 이집트 사이에는 수에즈 운하가 있었고, 수에즈 운하는 다름아닌 영국, 프랑스에 원유를 공급하는 유조선들의 주된 통로였다.
전쟁으로 인하여 수에즈 운하가 파괴되거나 소련의 지원을 받는 이집트에게 시설의 운영권이 넘어가게 된다면 영국과 프랑스의 원유 수급에 부정맥이 벌어질 것이었다.
초조해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연합군이 되어 11월 5일 이스라엘을 지원한다. 백년전쟁으로 대표되는 둘의 역사적 앙금을 생각하면 실로 진귀한 광경이었다.
▲ 영국의 입장에서 본 수에즈 운하의 가치.
수에즈 운하를 쓸 수 없게 된다면 영국은 해상교역을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류에 걸리는 시간은 물론이며, 폭풍이나 해적 습격 등 예측불허의 요인까지 더한다면 섬나라 영국은 문명이 퇴보할 기로에 선 셈이다.
요원들도 알다시피 불안정한 원유 수급은 휘발유나 경유의 품귀 현상에 따른 가격 폭등을 의미한다.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일련의 갈등은 내연기관 자동차에 이미 삶의 많은 영역을 의지하는 영국 사회의 ‘자원 안보’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에 영국은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며 최소한의 연료 소비로 자신들의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연비 좋은 탈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겨우 사람 1명이 간신히 들어가 몰 수 있는 장난감 같은 자동차, ‘마이크로카Microcar’가 유행한 것도 이 시절의 일이었다.
▲ 대표적인 마이크로카 중 하나인 BMW 이세타 300(1963년식).
개인용 이동수단으로서의 효율을 극대화한 초소형 차종들을 ‘마이크로카’라는 이름으로 통칭한다.
과거 극한의 효율을 추구했던 마이크로카의 설계는 오늘날 소형 전기차와 퍼스널 모빌리티에 뜻밖의 토대를 마련했다.
브리티시 모터 컴퍼니British motor Company/이하 BMC 또한 그러한 발상으로 연비 친화적인 차량의 개발에 착수한 업체들 중 하나였다.
이전부터 프랑스제, 서독제 등 외산 버블카가 영국의 길거리를 야금야금 채워가던 상황을 탐탁지 않게 보던 BMC의 수장 레오나드 로드Leonard Percy Lord는 이전에 경제적인 자동차 ‘모리스 마이너’를 설계했던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 알렉 이시고니스Alexander Arnold Constantine Issigonis/Alec Issigonis에게 새로운 차량을 설계할 것을 지시한다.
시대의 위기감이 긴박했던 탓일까. 신속하게 추진된 신차 설계 프로젝트는 이듬 해인 1957년에 시제품을 만들어내고, 1959년 8월에는 BMC 산하 모리스 모터스와 오스틴의 뱃지를 단 ‘미니’가 정식 시판되었다.
▲ BMC 미니(1959~2000)
최초의 미니는 배기량 1리터도 되지 않는 엔진에 폭 1,410mm, 길이 3,054mm, 무게 580kg의 A세그먼트 2도어 세단으로 시작했다.
구상부터 상업화까지 3년도 채 안 걸린 것인데, 이는 2023년에 신차 개발 기간을 54개월에서 36개월로 줄이겠다는 포부를 밝힌 폭스바겐에 비하여 전산화, 자동화가 부족하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속도다. 그만큼 영국의 자원 안보에 대한 절박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니는 개발과 생산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자동차 본연의 기능인 주행성능 또한 민첩했다.
같은 힘이라면 가벼운 것이 더 빠르게 속도가 붙고, 같은 속도라면 가벼운 쪽이 더욱 쉽게 멈출 수 있다.
당연한 물리법칙이다 - 그리고 마침 미니는 600kg 안팎의 가벼운 자동차였다.
앞서 미니를 설계한 알렉 이시고니스의 친구이자 포뮬러 1 출전 차량의 제조사 ‘쿠퍼 카 컴퍼니Cooper Car Company’의 대표 ‘존 쿠퍼John Cooper’는 이 점을 눈여겨보고 미니에 나름의 레이싱 노하우가 깃든 개조를 가했다.
쿠퍼의 이름을 딴 레이싱 경기용 미니이자 오늘날 잘 알려진 미니의 차종, ‘미니 쿠퍼MINI Cooper’의 유래다.
▲ 몬테 카를로 랠리에 참가한 미니 쿠퍼, 1968년.
미니 쿠퍼는 1959년 이탈리아 몬차의 랠리에서 애스턴 마틴의 DB4를 무려 1시간의 격차로 따돌리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경량의 미니 쿠퍼는 빠른 가감속과 기민한 코너링으로 구불구불한 코스의 랠리 레이싱을 오랫동안 석권했다.
BMC 미니의 개발은 레이싱 업계뿐만이 아니라 군사 분야에서도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공수부대의 실전성을 엿본 영국군은 냉전 시대를 맞아 신속한 투입과 전개가 가능한 공수부대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들에게 항공기에 적재 가능하며, 공중 투하하기 좋은 소형 경량의 공수부대용 전술차량이 생긴다면 큰 향상이 될 것이었다.
미니가 출시되던 1959년, 설계자 알렉 이시고니스는 곁가지로 미니의 부품과 설계를 군의 입맛에 맞게 적용한 공수부대용 소형 경량 전술차량을 선보였다.
군에 제식장비로 채용되지 않은 이 시제품은 개발코드인 ‘벅보드Buckboard’로 불렸다.
벅보드는 미니의 설계와 부품을 이식받은 차답게 폭 1.3m에 길이 3m, 무게 400kg 남짓의 소형 전술차량으로 공수부대에게 이상적으로 보였다.
더구나 같은 해 미니 쿠퍼가 거친 랠리 레이싱에서 호쾌한 주파능력을 선보이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시제품 벅보드의 군납은 따놓은 당상처럼 느껴졌으리라.
▲ 공수부대용 소형 경량 전술차량 BMC 벅보드를 도수 운반하는 영국 육군.
작고 가벼운 차량의 등장은 영국 공수부대의 작전반경과 행군속도, 공세종말점을 크게 늘려줄 것만 같았다.
어디까지나 차가 짐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험 운용을 해본 영국 육군은 이 차량의 도입을 거절했다.
미니와 비슷하게 작은 바퀴와 낮은 지상고는 야전의 지형지물에 걸려 기동불능이 되기 일쑤였다.
그나마 가벼운 자동차이니 공수부대원이 차에서 내려 직접 손으로 들어 옮기면 되긴 했다만, 애초에 자동차는 사람의 탈것이 아니던가. 자동차가 사람을 탄다는 발상은 영국 육군도 원하지 않았다.
미니로부터 비롯된 설계는 군용 전술차량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결국 전술차량판 미니, 벅보드는 1963년에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유산된다.
그래도 군용 전술차량을 표방하던 기술은 남아있던 덕이었을까. 시제품 벅보드의 설계를 이어받아 일반 소비자의 수요에 알맞게 다듬어낸 ‘미니 모크Mini Moke’는 이듬해인 1964년에 출시되어 그럭저럭 괜찮은 성공을 거둔다.
▲ 1968년식 오스틴 미니 모크.
군용 소형 전술차량 당시 B, C필러와 천막 없이 만들어진 시제품 벅보드는
천막과 골조를 선택사양으로 제공하여 상품성을 보강하고 민수시장의 다양한 취향에 부합하였다.
부품들을 옵션으로 쪼개어 제공하는 판매는 소비자 구매력이 낮은 시대에 성공을 거두었다.
미니 모크는 농지나 비포장도로, 해변이나 골프장 등 ‘민수용 험지’를 누비는 용도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노면에 가까운 차체와 B, C필러조차없는 프레임은 개방감 있고 달리는 맛이 있는 탈것으로 대중에게 운전과 여가의 즐거움을 선물했다.
게다가 1964년 출시 당시 405 파운드의 가격에 미니의 오프로드판답게 유지비까지 가벼웠으니, 미니 모크는 압도적인 가성비에 힘입어 미니와 함께 영국 서민층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유지비 적고 경제적인 생활형 자동차이자, 속도의 짜릿함, 여가의 즐거움까지 선사한 미니는 영국과 세계의 사랑을 받아 오늘날까지 자동차 업계에 작지만 거대한 상징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미니는 BMW 산하에 인수되며 엄밀히 따지자면 영국 자동차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 태생과 대중의 인지도로 인하여 ‘영국의 국민 자동차’로 각인되어 특유의 영국스러움을 과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유니언 잭을 형상화한 후미등을 단 미니 쿠퍼 S
2018년부터 모든 미니 차량의 후미등에 영국의 깃발, 유니언 잭 패턴이 기본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국민 자동차 미니는 자본주의에서는 졌을지언정 대중문화에서는 깃발을 내걸며 승리한 흔치 않은 사례다.
비록 미니가 전장을 누비기 위한 전술차량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전쟁의 여파로 흔들리는 자원의 수급안정성으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고 즐거움을 선사하여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은 독특한 업적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한다.
지난 2021년, 우리는 요소수 대란을 겪으며 작게는 디젤 차주들의 한숨부터, 크게는 물류비용의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우려를 겪지 않았던가.
그 전인 2019년에는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수입에 압박을 받아 다양한 소비재의 생산과 공급이 막힐 뻔했다.
의외로 자원마저 사회를 후려치는 무기로 돌변할 수도 있음을 요원들은 알게 모르게 이미 겪어온 셈이다.
2025년 이 순간, 세계는 무역 관세와 통상 압력, 자원 분쟁 등으로 사회 곳곳이 움찔거리고 있다.
요원들에게 어쩌면 과거 영국의 미니처럼 자원 안보의 위기에서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한 범국가적, 범사회적 전술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비록 총폭탄과 관련 없어 보이는 연비 좋은 자동차처럼 일상용품이 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