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지난 해는 저물고, 그를 잇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다사다난하며 기상천외한 재난과 사건들이 벌어지던 2023년에서 살아남은 모든 요원들에게 오늘도 방문해주어 감사의 말씀을 바친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아직 우리가 겪지 못한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로 소소한 난처로움부터 드물게는 목숨을 앗아갈 사고나 재난으로 우리의 준비태세를 시험할 것이다.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준비를 마친 숙련된 요원들이라면 큰 우려가 없겠다.
하지만 아직 일상의 크고작은 변수에 폭넓게 대응할 준비가 되지 않은 수습 요원들을 위하여 오늘의 칼럼을 준비하였다.
바로 EDC라는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낯선 영단어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Every Day Carry, 즉 “매일 소지품”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실천하고 다니는 전술적 덕목이기 때문이다.
몸에 걸치고 있거나, 주머니에 들어 있어 언제 어디를 가든 챙기고 다니는 물품이 고정적으로 있다면 곧 EDC로 지칭해도 무방하다.
이런 EDC의 일상에 밀접하다는 특성 때문에, EDC의 필수요소로 손꼽히는 물품의 종류와 범위는 각자의 생활상과 습관, 심지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커널형 이어폰을 EDC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출퇴근길의 통근버스 안에서 심신의 휴식을 취하는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주요한 EDC가 된다. 반대로 수십 년 전, 사회인의 필수 아이템으로 손꼽히던 삐삐는 이제 멸종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개인 휴대단말기기의 발전으로 휴대전화에 통폐합된 탓이다.
이처럼 EDC의 구성요소는 유동적이어 종잡기 힘들다. 하지만 기본적인 공식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
필자는 오늘 어디서부터 시작하여야 할지 헤매는 수습 요원들과, 새해를 맞아 스스로의 준비태세를 가다듬고자 하는 요원들을 위하여 5부작에 걸쳐 EDC의 기본을 이루는 장비들을 소개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본 칼럼을 준비하였다.
그 첫번째 장비를 소개한다 - 시간 관리를 위한 손목시계다.
이미 스마트폰이나 휴대전화 등이 보급화되어 지금의 시간을 알아내는 일은 말 그대로 ‘주머니에서 폰 꺼내 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되었다.
이런 배경에 혹자는 이제 시계라는 물건은 현대판 팔찌요, 패션 액세서리로서의 의의밖에 남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그 반대에 가깝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하는 개인 단말기기는 전자제품 계의 멀티툴이다.
전화나 문자는 물론이며, 녹음기, 카메라, 손전등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고, 10여 년 전까지 있었던 MP3, PMP의 도태를 앞당긴 장본인이기도 하다.
거기에 어플리케이션의 설치에 따라서는 손바닥 위 은행이나 게임기, 지도, 쇼핑몰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이처럼 기능이 무궁무진함은 말할 것도 없으나, 한계 또한 명확하기도 하다.
엄연한 전자제품으로서 배터리를 빈번히 관리해야 된다는 점과, 러기드폰을 제외한 일반 기종들은 아직까지 물과 먼지, 충격 등에서는 못미더운 한계가 있으며, 사용 시 최소한 한쪽 손을 반드시 구속하고 만다는 번거로움이 분명하다.
반면에 손목시계는 스마트폰에 비해 기능이 제한적이지만, 현재의 시간을 알려주는 독립적인 기능만큼은 개인단말기기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신뢰도를 지닌다.
하루 남짓, 심지어는 한나절조차 버티기 힘들어 별도의 보조배터리까지 동원해가며 배를 채워줘야 하는 스마트폰에 비해 손목시계는 최소 수 개월에서 수 년을 묵묵히 행정한다. 돈을 조금만 더 투자하면 10년이 넘는 배터리 수명을 자랑하거나, 태양광을 받아 스스로 충전하는 신기까지 부린다.
금지옥엽 어린 자식을 다루듯 물에 젖을까, 손에서 놓쳐 떨어뜨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낮은 가격대의 시계도 수심 100m 이상의 방수성능은 기본적으로 지원하며, 메이커나 기종에 따라서는 깊은 바닷물 속, 모든 기계에게 치명적인 진흙밭, 혹은 저온 저압의 고산지대나 비행 환경에서도 일정한 작동을 보장한다. 이쯤 되면 손목시계가 몸 속 심장이나 간보다도 튼튼할 지경이다.
이하는 손목시계로서의 덕목에 부합하는 모범사례들이다.
▲ 기본에 충실한 가성비 EDC 워치 - 베르투치 A-3P 스포츠맨 필드시계 13350
(상품링크 : /app/product/detail/124005/0)
강화폴리카보네이트 42mm 케이스는 튼튼하면서도 금속의 무게를 덜어냈다.
문자판과 바늘은 화려함 없이 간결하며, 슈퍼루미노바 처리로 자체발광하여 어두운 곳에서도 시인성에 부족함이 없다.
미네랄 글래스와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백으로 빚은 100m 방수성능은 일상에 흔한 깊지 않은 물과 습기를 막아내기에 충분하다.
시간을 알려주는 것 외에는 부가기능이라고는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법이다.
▲ 쓰고 난 시간의 영수증 발급기 - MWC 크로노그래프 하이브리드 파일럿
(상품링크 : /app/product/detail/128239/0)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계좌에 얼마가 있는가 뿐만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쓰는가 또한 알아야 한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지금 몇 시인가”를 알려주는 시계와 “내가 얼마나 시간을 썼는가”를 알려주는 초시계가 한데 모인 “크로노그래프”가 만들어진 이유다.
시계의 중앙으로부터 2시, 6시, 10시에 배열된 조그마한 다이얼들은 사용자가 측정을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쓴 시간을 시, 분, 초로 나타내는 영수증과 같다.
▲ 시간과 공간의 변화로 속도를 재다 - 스피나커 헐 크로노그래프 쿼츠 (라피스)
(상품링크 : /app/product/detail/133460/0)
흔히 속도는 m/s, km/h 등 단위시간당 주파거리로 표기한다. 일정 시간동안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계산하는 개념인 셈이다.
뒤집어보면, 일정한 거리를 주파하는 데에 걸린 시간으로 속도를 역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계 베젤을 따라 새겨진 숫자와 눈금 등, “타키미터(시계 베젤 1시 방향 참조)”는 1km를 주파하는 순간 초침이 가리키는 숫자를 통하여 평균 속도를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치다.
▲ 고요한 바닷속에서도 시간은 흐르는 법 - 해저드4 헤비 워터 다이버 블랙 타이 와치 블루 야광 (블랙/화이트)
(상품링크 : /app/product/detail/120378/0)
바닷물에서도 부식되지 않도록 내식성이 강한 티타늄 케이스에, 수심 300m(990FT) 내압과 잠수 시간 측정을 위한 회전 베젤이 적용되었다.
빛이 적은 바다 속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큼지막한 문자판과 야광 기능이 있는 트리튬으로 시인성이 강화되었다.
용두는 방수를 위해 잠금 및 밀폐 기능이 있으며, 잠수활동 중 신체나 다른 장비와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반적인 3시 방향이 아닌 4시 방향으로 치우쳐 실용성을 강화했다.
정리하자면, 잠수부 등 해양환경에 밀접한 이들을 위한 손목시계로서 부족함이 없다.
▲ 이번에는 하늘이다 - 엠티엠 에어 스트라이크 2 (그레이)
(상품링크 : /app/product/detail/115027/0)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계에 디지털 시계가 합쳐져 조종사를 보좌할 다기능과 시인성을 겸비한 하이브리드 시계.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황동과 탄소섬유로 짜인 다이얼과, 작열하는 직사광선, 성층권의 자외선에 대비하여 반사 방지 및 자외선 보호 코팅된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래스가 적용되었다.
어두운 조종석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자체발광 문자판과 바늘이 기능성 있게 자리잡았다.
액정화면에는 50여 곳이 넘는 세계 주요 도시의 현지 시각을 지원하며, 디지털 나침반 기능까지 더해져 항로의 확인을 돕는다.
위의 예시들 외에도 디자인, 소재와 부가기능은 천차만별이지만, 사용법은 모두 간편하다. 시간을 확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손목에 팔찌처럼 매고 필요할 때 가볍게 보기만 하면 된다. 한쪽 손에게 쥐던 물건을 놓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눈앞까지 가져오도록 할 번거로움이 없으니, 시간을 알고자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모순도 끝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루는 모두에게 2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모두가 마땅히 관리하며 써야 하는, 필연적이고 공평한 “자원”인 셈이다.
새해가 되며 2024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모두에게 지급된 지금, 같은 양만큼 주어진 자원을 실시간으로 계측하며 남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면 그만큼 전술적 우위를 점하지 않겠는가. 바로 독립적이고 신뢰도 높은 휴대용 시간 계측 장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EDC의 정석적 구성 중 첫번째, 손목시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다음 화에서는 자본주의와 정보화 사회를 헤쳐나가는 현대의 모험가에게 필수적인 생존용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댓글 8
저는 넷피엑스에서 판매하는 작은 나침반을 손목시계 버클에 차고 다니는데, 북쪽이나 남쪽을 가리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길을 잃을 때 방향을 잡는 데 유용합니다.
넷피엑스의 앞날이 창창합니다. 이런분은 진급시켜야합니다^^
https://www.youtube.com/@edc-ru8rq/videos
저도 유투브에 이런거 좋아해서 넷피에서 구입한 여러제품을 일찌기 소개해왔습니다
앞으로 글을 쓰시는데 조금이나마 위의 EDC 소개를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뼈속까지 넷피의 단골고객입니다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넷피엑스에서 구경하다가 아이템들의 이름(?)으로 본 것 같기는 한데.... 사고 싶던 아이템들에게만 집중하다보니 아무 생각 없이 넘겨버린 단어이죠. ㅋㅋ
이번 매거진에서는 저도 느꼈던 택티컬적인 시선이군요 ! 휴대폰이 다양한 것들을 대신하거나 대체하고 있지만, 손목시계만큼은 가치를 인정합니다. 마치....블루투스 이어폰을 사두고는 충전하기가 귀찮아 줄이어폰으로 살아가는 저는 더욱이 말이죠.... 잘 읽다갑니다 ! 다음 화가 기대됩니다. ㅋㅋ
문득 오래전 세상을 떠난 직장 상사의 말이 떠오르네요 "시간을 만드는 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탈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드리는 Plumbum입니다.
모두들 새해를 맞으며 만 나이 기준 한 살씩 더 나이가 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점점 귀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잘 몰랐습니다만,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는 모양이더라고요.
한 살의 나이가 대단한 벼슬처럼 여겨지던 시절에는 시간이 엉금엉금 간다 싶었는데,
10대 시절은 시간이 가는 게 기우뚱 느껴진다 싶더니 20대는 스르륵 흘러가 버렸던 게 충격이었죠.
저만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만, 세상을 앞서 사신 분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이 점차 빠르게 간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었습니다.
새해가 되며 모두들 만 나이로 한 살씩 더 늙어버린 지금, 우리 모두에게 시간은 더욱 귀해진 셈입니다.
다른 EDC 아이템보다도 시계만은 요원분들께 가장 먼저 소개드리고 싶어 오늘의 글을 준비해 왔습니다.
돈이야 벌면 되고, 물건이야 사면 될 일이지만
시간만큼은 벌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다음 주에도 요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아이템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무탈하세요. 긴 글 읽어주시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