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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워치 - 참호 속 진흙탕에서 백화점 진열대까지
  • NETPX
  • 2024-07-09
  • 조회수 629
  • 댓글 4

 전술장비, 혹은 택티컬 기어라 하면 을씨년스러운 폐허의 매캐한 공기 속에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전장의 것들을 떠올리곤 한다.


 예컨대 방탄복이나 방탄모, 야간투시경, 무전기 등 군장류가 그러하다. 이는 아마도 여러 전쟁, 전투 관련 미디어나 전쟁사 기록, 사료 등에서 주로 조명되는 전술적 유, 무형의 요소들 때문이리라.


 이처럼 평시보다는 전시가 어울리고, 아름다움보다는 쓸모를 따르며, 정갈한 문명보다는 혹독한 난투가 어울릴 것만 같은 전술장비가 뜬금없이 백화점의 진열장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지만 사실이다. 미국식 손목시계의 대부인 해밀턴(Hamilton), 제임스 본드의 손목시계인 오메가(Omega), 스위스의 정밀한 시계 브랜드로 이름 높은 론진(Longines), IWC 등 백화점을 수놓은 다양한 명품 시계 브랜드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전투원들의 원활한 작전수행을 보좌하던 야전용 손목시계, ‘필드워치(Field Watch)’의 선구자들이라는 점이다.


 수 세기 전인 18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손목시계는 ‘팔찌에 시계가 가미된 장신구’로 여겨지며 여성용 기능성 액세서리로 보편화되었다. 반면에 동시기 남성들은 회중시계를 휴대형 시간 파악 디바이스로 썼으며, 지금의 스마트폰과 비슷하게 주머니 속에 넣어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상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유럽을 뒤엎은 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참전한 이들로부터 위와 같은 휴대용 시계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어난다.




▲ 1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기록사진.

공학의 발전으로 기관총이 나오고, 화학의 발전으로 독가스와 방독면이 나오며 이전과는 색다른 전술이 대거 개발되었다.

전문지식과 장비를 기준으로 병과, 주특기가 세분화되고, 언제 누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가 전투의 승패를 가르게 되었다.


 당대의 전술은 양 진영이 평원을 사이에 두고 참호를 파 서로 대치하는 ‘참호전Trench warfare’ 양상으로 이어졌다. 양쪽 참호 사이의 평원은 엄폐물 하나 없는 허허벌판으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면 이를 본 상대 참호로부터 집중사격을 받아 살아남을 방도가 없었다.



 

▲ 일반적인 참호의 구조를 그린 삽화.

드넓은 평원을 가운데에 끼고 위 참호 구조가 서로를 향하여 대치하는 양상이 유행하여 ‘참호전(Trench warfare)’으로 통칭한다.

적의 총격으로부터 몸을 숨길 엄폐물이라고는 참호밖에 없었고, 가운데의 평원에 나서면 적의 이목과 집중사격을 받는다.

죽음만이 가득한 평원, ‘무인지대(No man’s land)’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삽화의 왼쪽 위, 적 방향).


 두 참호 사이의 수백 미터에 달하는 무인지대를 뚫고 전선을 밀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보병의 머릿수로 적 참호로부터의 총탄을 맞아가며 밀고 나가는 방법이 흔히 쓰였다. 당시 전투에 1만여 명의 사상자는 지휘관에게 저렴한 댓가 쯤으로 여겨졌으며, 애꿎은 젊은이들은 그저 적의 탄약을 소비시키기 위한 교환비용으로 귀한 목숨을 허무하게 잃었다.


 이 무식하고 비인도적인 전술의 고착은 포병과 보병의 제병 합동 작전으로 전환기를 맞는다.

 포병의 포격으로 적 참호 병력들이 고개를 내밀어 맞서지 못하도록 시간을 벌며, 그동안 달려나간 보병이 적 참호로 뛰어들어 적을 제압하고 참호를 강탈하는, 생각만큼은 그럴싸한 전술이었다.




▲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포병의 척추로 여겨진 18 파운더 야포.

영국 육군은 위 야포로 고폭탄이나 유산탄, 화학탄을 쏘아 적 참호 주변에 지속적인 화망을 흩뿌려

적 보병이 고개를 내밀지 못하도록 제압하고 아군이 돌격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론은 좋았으나 여기에서 심각한 두 가지 우려가 제기되었다.


 첫 번째로는 적 참호에 돌격하는 아군을 보호하기 위한 포격이 조금이라도 짧게 끝날 때의 문제였다. 아군 보병은 적 참호의 코앞에서 응사하는 지근거리의 적들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적 참호에 돌격하는 아군을 보호하기 위한 포격이 조금이라도 늦게 끝날 때의 문제였다. 달려나간 보병들은 도리어 아군 포병의 지원사격에 맞아 당하고 만다.

 어느 쪽이든 정확한 시간에 두 병과가 정확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보병은 불길에 뛰어드는 날벌레와 같이 사그라든다.


 말 그대로 1분 1초가 민감한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보병과 포병 모두가 시계 속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1분 1초 단위로 맞물려 기능하면 될 일이 아닌가.


 두 병과가 초 단위로 정확한 협공을 가한다면 참호 안의 적병들은 계획대로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정리될 것이었다. 적의 탄약을 소모시키기 위함에 지나지 않던 아군의 무의미한 희생도 줄어들며, 전투의 승리와 병력의 보존, 개개인의 생존 모두 보장할 수 있었다.


 이에 보병과 포병은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휴대용 시계를 오차 없이 맞추었고, 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포격의 시작과 화력지원을 지속할 시간을 합의하였다.


 머지않아 야전의 군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휴대가 간편하며, 초 단위로 정확하고, 혹독한 전장의 충격과 기후에서도 기능하는 ‘시간 측정용 휴대장비’를 갈구하게 된다.


 물론 기존의 회중시계가 이전부터 개인 소지품으로 퍼져 있었으나, 쉼없이 돌격하거나 포탄을 재야 하는 급박한 전장에서는 시간이 귀했다. 회중시계를 주머니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동작을 멈추고 한쪽 손을 일시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행태는 적에게 목숨을 헌납하는 미련함으로 치부되었다.


 자연스럽게 군인들은 손목에 맬 수 있는 시계를 급조하거나 구하여 차고 다니기 시작했다. ‘필드워치’의 탄생이자, 이전이라면 여성의 희고 가는 손목을 치장하던 액세서리로만 여겨지던 ‘시계 팔찌’가 전술용품으로써 보편화된 시발점이다.


 초기의 필드워치는 군이나 정부에서 지정한 기준이 없이 개인이 사비로 구하여 쓰는 개인물품이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정해진 형상이나 규격이 없었으니, 당대 시계 사용자인 군인들의 수요와 이에 부응하려는 시계 제조사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형태가 많이 보인다.




▲ 20세기 초, 회중시계를 손목에 고정시키는 기능의 가죽 스트랩.

이전부터 쓰여왔던 회중시계를 손목에 맬 수 있도록 가죽으로 회중시계 케이스 겸 팔찌로 만들었다.

당시의 시계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이전부터 쓰던 회중시계를 두고 새 손목시계를 구하기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각광받은 액세서리.




▲ 1차 세계대전 중엽의 과도기에 출시된 독특한 필드워치들.

넘어지고 부딪힐 구석이 많은 전장에서는 어떤 물건도 곱게 지내지 못하는 법이다.

특히 시계는 외부로 드러난 글래스가 깨져 망가지는 사고가 잦았고, 이에 대비하여 철창을 씌운 구조가 한동안 유행했었다.

덕분에 시계의 수명은 늘었으나 오히려 철창에 가려진 바늘을 읽기 힘든 모순적인 단점이 따랐다.




▲ 과도기를 거치며 정립된 야전용 시계의 모범적인 형태.

굵직한 숫자 표기, 테두리를 따라 나뉜 분 눈금, 6시 방향에 독립된 초시계를 마련해 시간 확인 기능에 최적화된 형상으로 수렴진화하였다.

위험하게도 시침, 분침, 숫자 표기에는 야광 도료로 라듐을 썼다.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초기 필드워치의 중구난방이던 생김새는 말 그대로의 ‘실전 테스트’ 속에서 유용성을 시험받았다. 이윽고 1차 세계대전 말에는 전술행동 중에도 빠르게 보아 시간을 읽어내기 편리한 대동소이한 모양으로 수렴진화하였다.


 공통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큼직하게 써낸 아라비아 숫자, 야광 도료를 칠한 시곗바늘, 분침을 정확히 읽기 위한 60등분 눈금의 테두리, 다른 바늘과 겹쳐 잘못 읽는 일이 없도록 6시 방향으로 독립시킨 초침 다이얼 등이 그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야전용 손목시계의 필요성과 실용적인 디자인을 다듬었다면, 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목시계가 주요한 개인 전술 장비로 다루어지며 규격화, 보급화되었다. 영국군에서 1939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A.T.P(Army Time Piece / Army Trade Pattern)’가 그 주역이다.




▲ 뷰렌(Buren) 사에서 생산한 A.T.P.

당시 군용 시계를 납품하던 이 제조업체는 훗날 우리가 백화점에서 접하는 ‘해밀턴(Hamilton)’ 브랜드 역사의 일부가 된다.



 이 군용 손목시계는 앞선 1차 세계대전에서 정립된 야전용 손목시계의 외형적 필수요소를 총망라하며, 영국 국방부의 지시로 10.5~12 Ligne(*시계 무브먼트의 직경을 재는 단위. 약 23.7~27.1mm에 해당한다) 사이의 15석(Jewels) 기계식 무브먼트, 당대로서는 정밀했던 일 오차 ±30초의 정확도, 발광 소재의 시침과 분침 도색, 스테인리스 스틸 또는 니켈, 크롬 도금된 케이스 소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세세하게 규격화되었다.


 A.T.P는 사용자인 군인의 편의 뿐만 아니라, ‘한창 전쟁 중인 나라의 군용 보급 장비’라는 점에서 대량 생산과 일정한 품질의 유지, 원활한 보급을 염두에 두어 군용품으로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근래의 시계에 비하면 다소 작은 30~34mm 외경의 케이스는 전투원의 역동적인 활동에 거추장스럽지 않으며, 한편으로는 개당 생산에 적은 자원을 소모하여 끊임없는 생산과 대량 보급에 부합했다.


 소수의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 생산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케이스는 탄피의 주 재료인 황동으로 이루어져 전시 원자재 수급과 가공에 용이했고, 악천후나 땀, 바닷물 등으로 염려되는 부식은 표면을 크롬으로 도금하여 약점을 보완했다.


 또한 예전부터 잦은 파손으로 말썽이었던 유리 재질의 글래스는 1930년대에 상용화된 신소재, 셀룰로이드 글래스로 대체되어 전과 같은 투명한 시인성과 내구성을 겸비하였다.


 거기에 둥근 시계알의 위아래로 철사를 접붙여 마련했던 시계줄 고리는 케이스와 일체화되어, 야전 속 격한 활동에서도 고리가 부러져 손목시계를 잃을 염려를 없앴다.


 그야말로 생산과 보급, 사용의 모든 영역에 흠 잡을 데가 없었던 A.T.P는 총 17개의 시계 제조업체(Buren, Cortebert, Cyma, Ebel, Enicar, Eterna, Fontainemelon, Grana, Lemania, Leonidas, Moeris, Reconvilier, Record, Revue, Rotary, Timor, Unitas)를 통해 총 133,600개가 생산되며 전난의 시간을 달렸다.




▲ 다양한 브랜드에서 생산한 A.T.P 손목시계.

동일한 규격과 지시사항 아래에서 만들어진 A.T.P는 제조업체의 공법을 제외하면 거의 균일한 외형을 공유한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굵직한 사건이 밴 문화재임에도 낮은 희소성과 거친 전장에서의 사용감 때문에 금전적 가치는 높지 않다.



 이만해도 A.T.P는 성공적인 군용 필드워치였지만 이후 1943년, 영국 육군 원수이자 윈스턴 처칠 내각의 군사 자문인 앨런 브룩(Alan Brooke)은 기존의 A.T.P의 한계를 인식하고 전투용 손목시계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한다.


 기존의 흰색 혹은 은색 다이얼은 밝은 색상으로 적에게 발각되기 쉬웠다. 이를 검정색 바탕에 흰색 아라비아 숫자로 대체한다면, 적의 눈에 덜 띄면서 시간을 쉽게 읽어내는 사용 편의는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에 들며 보편화된 군용 차량과 장갑차, 전차, 함선, 전투기 등 각종 기계화 전력이 내는 진동은 시계의 일정한 행정에 오차를 줄 수 있음을 염려하였다.

 그는 이미 선박이나 항공기에서 성공적으로 쓰이던 내진 기능의 시간 측정 기구, 크로노그래프에 준하는 정밀도의 손목시계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기계와 장비를 다루는 전투원에게 손의 연장과 같이 쓰이는 장갑을 인식하여 맨손이 아니어도 시계를 조작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용두를 대형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사람과 기계가 함께 싸우는 현대전의 생태계를 간파한 그의 탁월한 안목은 적극적으로 수용되었고, 이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말부터 기존의 A.T.P를 대체하는 새로운 범용 필드워치로 보급된다. 바로 ‘W.W.W(Watch, Wristlet, Waterproof)’의 탄생이었다.




▲ 오메가(Omega)에서 생산한 W.W.W.

올림픽 파트너이자 제임스 본드의 씨마스터를 위시한 명품 시계 브랜드, 그 오메가가 맞다.

W.W.W의 특징이자 영국군의 보급품에 붙는 화살표 문양이 시계 중앙에서 12시 방향을 향하여 그려져 있다.



 W.W.W는 앞서 제안된 검은 다이얼과 흰색 숫자 표기를 반영하였으며, 무브먼트와 케이스의 지름을 3~5mm 가량 대형화하여 진동에 내성을 갖춘 신뢰도를 실현하였다. 용두의 크기도 늘려, 장갑 너머로도 느껴지는 굵직한 촉감으로 조작 편의까지 챙겼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해결책이어도 당시 정밀 가공 기술의 현실적인 한계와 원하는 실용성능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룬 묘수라 하겠다.


새로운 제식 필드워치의 입찰을 내건 영국군의 요구에 이전부터 A.T.P를 생산했던 7곳의 업체(Buren, Cyma, Grana, Lemania, Eterna, Record, Timor)와 새로운 5개 업체(IWC, Jaeger-LeCoultre, Longines, Omega, Vertex)가 응하며 총 12개의 업체가 새로운 W.W.W의 생산을 도맡았다.


 이미 축적된 시계의 대량생산 노하우와 절정으로 치닫는 전황, 이전 시계보다 나은 실전성이 어우러진 덕에 W.W.W는 1944년부터 1945년까지 고작 1년여 기간동안 도합 150,000개 가량이 생산되었다. 앞서 A.T.P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6여 년간 거둔 성과를 단시간에 추월하는 대성공이었다.



▲ 각각의 시계 제조사별  W.W.W

12개의 시계 제조사로부터 생산된 2차 세계대전 시대 영국군의 범용 손목시계라는 점에서

마침 2차 세계대전 배경의 영국군 12명의 활극을 다루는 영화의 이름을 따 ‘더티 더즌(Dirty Doze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윽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대규모의 군 병력 수요가 사라졌다.

 군인이나 전술가 또한 사회에 대단히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다. 전장에서 초 단위로 합을 맞추어가며 서로 다른 병과에게 자신의 목숨을 의지할 일도 더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A.T.P니 W.W.W 같은 군용 보급 시계를 찰 일 또한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잉태되고 성장한 필드워치는 바늘을 멈추지 않았다.


 전후 사회로 돌아온 전직 군인들의 손목에 매인 시계는 귀중한 자원인 시간을 계측하고 일정을 계획하며 사회의 효율적인 재건을 돕는 일상의 전술장비로 자연스럽게 임무를 전환하였다.


 이전부터 대량으로 생산되고 보급되었던 필드워치는 전쟁 전 비싼 과시용 사치품으로 인식되던 휴대용 시계를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일상용품으로 바꾸었다. 전장에서 요구되었던 높은 정확도와 명확한 시간 표시 기능은 시계를 접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도 정확하고 알기 쉬운 시간 개념을 보편화시키며 사회 전반에 빠른 전후복구와 경제활동을 유도하는 공을 쌓았다.


 필드워치는 전장에서 나와 동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필수품이었고, 산업화와 기계화, 자동화의 배경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며, 태생이었던 전난을 초월하여 전시와 평시를 가리지 않는 이로움으로 전술의 효용을 만인에게 전한 전천후 전술장비로 거듭났다.


 오늘날, 족히 100여 년 전의 유물이어야 했을 필드워치는 두 세계대전을 지낸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들이 쌓은 기술력과 명성을 기반으로 가치를 키워나갔다. 지금은 시계의 판도를 뒤엎는 배터리와 쿼츠 무브먼트로 무장한 신생 시계 브랜드의 공세 속에서도 역전의 정신을 되살리며 소위 ‘명품’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하였다.




▲ ‘티모르(Timor)’ 사의 헤리티지 필드 ATP.

과거 영국군의 필드워치인 A.T.P, W.W.W를 생산하던 노하우와 역사를 이어오는 필드워치 계의 노포.

티모르는 한때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타격을 입었으나 2015년에 위 유산을 재탄생시키며 저력을 과시했다.




▲ W.W.W를 리메이크한 ‘버텍스(Vertex)’ 사의 M100.

이전의 36mm 대비 대형화된 직경 40mm 케이스에 조각처럼 깎은 수퍼루미노바 다이얼로 제식 장비다운 진중함을 선보인다.

W.W.W 생산 시절, 단 12곳의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만이 사용을 허가받은 화살표 표식은 타 경쟁자가 모방할 수 없는 헤리티지다.




▲ ‘오메가(Omega)’ 사의 1913 18” CHRO Calibre

1차 세계대전을 앞둔 1913년, 이전에는 생소하던 ‘공군’과 ‘조종사’라는 신종 전술가들이 새롭게 나타난다.

GPS가 없던 시절의 조종사들은 비행 시간과 지형, 태양의 방위 등 원초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와 항로를 계산했었다.

고도, 저압, 저온, 풍압, 습기, 진동을 이기며 시간을 측정하던 당시 영국 왕립 공군용 장비를 다시 빚어낸 오리지널 앙코르 모델.



 전술, 혹은 택티컬이라는 가치는 업이나 전평시를 가리지 않는다. 흙구덩이 속 구정물에 절어있는 보병이든, 미학을 즐길 여유가 넘치는 재력가든, 전술이 남긴 유산은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는 진취적인 사람들 모두에게 생활이자 생존의 방식이다.

 

 필드워치에 담겨있는 개발과 발전의 치열한 서사가 요원들로 하여금 전술을 거칠고 고된 행동 혹은 문명과 동떨어진 폭력적인 행위로만 여기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댓글 4

선우선율대디
2024.11.27 14:19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벌써 몇번째 읽어 내려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티모르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헤리티지 필드 ATP 수령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이 글을 쓰시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공부하시고 고민하셨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카페에 시계 기추기겸 기재하신 칼럼의 내용들을 공유하고 싶은데요.
괜찮을까요?
p지름신q
2024.07.14 16:13
오늘 트럼프 대통령이 총상을 입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국제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긴장이 됩니다. 우리나라도 넷피엠씨 같은 민간기업을 통해 군 장병들에게 양질의 전술제품을 서둘러 공급했으면 좋겠습니다.
Rush
2024.07.09 16:47
오늘날의 명품시계들이 저런 과거가 있었군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Plumbum
2024.07.09 11:45
안녕하십니까, 요원 여러분.
택티컬 에디터 Plumbum이 7월을 맞아 조금 늦게 돌아왔습니다.

녹양 사무실 이전과 패밀리데이 행사 준비, 진행 등등,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6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요원분들의 호응과 응원 덕에 모두 잘 이겨내어, 새로운 사무실에서 번듯한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짧은 소매를 자주 입는 여름을 맞아 요원분들께서 자주 찾는 필드워치를 글감으로 가져와 봤습니다.

어느 날, 택티컬 용품들을 보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 기준으로는 다소 편협한 말을 들었습니다.
“공사장 인부들 쓰는 거 같아.”
대학교 시절, 방학동안 공사장 일을 해봤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갔습니다만 동의는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전술, 혹은 택티컬이란 거칠고 물리적인 영역에서만 다루어지는 도구들 쯤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연한 현대 문화 속 여러 굵직한 장르를 세운 기반이자 생활의 철학, 나아가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자랑하는 명품까지도 될 수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어 기를 쓰며 이번 화를 써나갔네요.

이번 여름에 손목을 채울 액세서리로 필드워치를 찾으시거든, 한번쯤 손목에 밴 전술의 가치를 가깝게 느끼실 수 있으시다면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또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다사다난한 요즘, 요원분들만큼은 전술적인 혜안으로 무탈히 지내시길 빕니다.